협동어린이집 | 우리나라에서 부모협동보육은 누가 시작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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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각생 작성일13-05-28 17:18 조회72회 댓글0건본문
부모협동보육의 시작인 공동육아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4년이지만, 그 배경에는 1970년대 말부터 빈민 탁아운동을 해 온 대학생 집단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과 ‘공동육아연구회’라는 모체가 있었습니다.
1978년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에서는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1980년 ‘난곡 해송 유아원’의 설립하였습니다. 유아원을 운영하면서 교육현장에 대한 자율적 통제력을 유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 교육이 교육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지지와 노력과 동시에 교육 내부의 장기적 안목과 자기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1984년에 설립한 ‘창신동 해송 아기둥지’는 자연과 일과 놀이가 결합된 생활을 강조하는 교육관에서 출발하여, 교육내용 구성에 있어 교사와 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보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해송아기둥지는 현재 ‘해송 지역아동센터’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 영유아보육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던 때 ‘해송어린이 걱정모임’은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으로 재발족되었습니다. 1991년 계층 차별적인 보육정책과 사회적 육아의 영리화․관료화의 문제가 근간을 이루는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자 걱정모임은 ‘공동육아연구회’로 개칭하고 직접 구체적인 공동육아 터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부모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동육아 터전을 만들고, 서로의 기대와 가치관을 나누고 절충하며, 함께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이 고안되었고, 그 결과 1994년 신촌 우리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공동육아연구회’는 1996년 ‘(사)공동육아연구원’으로 정식 발족하였고, 2001년 10월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으로 개칭하였습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영유아 보육만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을 공동체적으로 키우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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