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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프레시안] 박혜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 “결혼에 ‘영원히’를 없애면 서로 긴장하며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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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6-03-03 17:33 조회1,7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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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504141040381&pt=nv

 

[유인경이 만난 사람]박혜란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 “결혼에 ‘영원히’를 없애면 서로 긴장하며 살지 않을까요”

 

프랑스의 교수이자 소설가인 아니 에르노는 상상력이나 허구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만 글로 써서 유명하다. 여성학자이자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인 박혜란씨도 그렇다. 아니 에르노가 연하 남성과의 뜨거운 사랑을 나눈 책(단순한 열정) 등을 썼다면 박씨는 여성학 이론서가 아니라 자녀교육(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나이(나이듦에 대하여), 부부(여자와 남자, 소파 전쟁) 등 자신의 생애주기와 관련한 책을 써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됐다.

올해 칠순, 결혼 45주년을 맞아 그가 또 <결혼해도 괜찮아>란 책을 펴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에게 생뚱한 결혼예찬론을 펴낸 줄 알았더니 ‘여럿이 함께 빠지면 진흙탕도 놀이터가 된다’며 결혼이란 진흙탕에서 45년을 구른 내공을 전한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도 유명한 박혜란씨를 만나 자녀교육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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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은퇴해서 한가할 때인데 무척 바쁘게 사십니다.

 
 
 
 
 

“요즘 한 달에 강의만 5~10회는 합니다. 새 책을 내서인지 인터뷰나 방송 출연 요청도 많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에 엄청난 성공을 거두거나 절정을 누렸다면 그 여운으로 느긋하게 살 텐데 전 절정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바쁜가 봅니다. 100세 시대라는데 우리 여성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지, 우리 스스로 어떻게 잘 나이 들어갈지, 늙어가는 남편과 어떻게 사이좋게 지낼지 등을 이야기합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써서 본의 아니게 가장 복 많은 어머니의 대표주자가 됐습니다. 세 아들 모두 서울대 출신의 건축가, 가수, 문화방송 드라마 프로듀서 등 전문직인 데다 결혼하고 손주들까지 봤으니 말입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잘 자랍니까.
“전 요즘 기준으로 보면 불량엄마입니다. 신문기자로 일하다 둘째를 낳고 전업주부가 됐습니다. 막내인 셋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이를 다 키웠다’고 생각해서 여성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둘째인 가수 이적이 방송에서 한 말이 있어요. ‘성적이 좋게 나와서 엄마에게 공부 잘했으니 뭐 해줄 거냐고 물으니 공부는 네 것이지 내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더라. 그 후에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렇잖아요. 아이의 성적표가 왜 엄마의 성적표가 되어야 합니까. 다만 저는 수시로 껴안고 비비는 등 스킨십을 자주 했고 아이들이 무얼 해도 믿고 기다려줬습니다. 처음 자녀교육책을 쓴 게 사교육 열풍이 엄청났을 때였어요. 그때도 저는 아이들을 마음껏 놀게 해주라고 했죠. 가장 안 되는 운동이 부모교육운동입니다. 환경이나 여성운동 등은 눈에 띄는 성과가 크고 운동가로서의 자부심도 느끼는데 부모교육은 너무 힘들어요. 특히 요즘 어머니들은 자신의 교육수준과 자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져서인지 과거 몇몇 극성 어머니들이 하던 교육을 거의 대부분이 합니다. 그러니 어머니나 아이들이 모두 지치죠. 어머니의 역할은 끝이 없습니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도 취업, 결혼, 손주양육 등 죽을 때까지 다 책임지다보면 어머니가 안 필요한 순간은 없는데 어떻게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만 올인하는지 답답합니다.”

그런데 교육환경이나 물질은 풍부해지고 정보도 넘치는데 정작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다고 합니다.
“부모가 다 알아서 꿈을 꿔주기 때문이죠. 엄마가 과외부터 학교 숙제까지 다 신경쓰고 대학 전공이나 직장, 심지어 배우자까지 다 결정하는데 왜 고단하게 고민하고 꿈을 꾸겠습니까. 그러니 자꾸 부모에게만 의존하게 되고 잘못되면 부모, 특히 엄마를 원망하게 됩니다. 얼마 전 대치동의 유명 입시 컨설턴트가 부모 특강 때 ‘아이를 잘 키우려면 사회성, 창의성이란 단어는 잊어야 한다. 그래야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 갈 수 있다. 사회성 등을 익히면 절대 명문대 못 간다’고 강조하더군요.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부만 잘하는 아이는 사회성, 도덕성, 휴머니즘 등을 배울 수가 없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줬어요. 매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를 궁리했죠. 이적의 노래도 다른 노래와 좀 다른 면이 있고, 막내는 <운명처럼 널 사랑해>란 드라마를 연출했는데 만화적 요소가 많다고 합니다. 다 어릴 때 만화책 보고 뒹굴뒹굴하며 논 덕분이에요. 아니 어떻게 이 시대를 사는 엄마들이 다음 세대를 살 아이들, 그것도 100년을 살 아이의 인생의 틀을 짜줄 수 있습니까. 전 그럴 능력도 자신감도 없어 그저 아이들을 내버려뒀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럴 자신감이 없습니다.
“주변에서 걱정을 빙자한 공포심을 많이 조장하죠. ‘그렇게 아이를 놀리면 큰일난다’ ‘너만 별수 있을 것 같냐’ ‘나중에 자식이 원망한다’ 등등…. 그런데 공부는 억지로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또 공부가 세속적 행복을 보장하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이 아닙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 작은 일에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상대적 박탈감’인데 대체 언제까지 남과 비교하며 불행해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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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실컷 재미있게 놀라고 한 세 아들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효자이긴 합니까.
“우린 쿨한 모자 사이예요. 서로 ‘호감’을 가진 사이라고나 할까요.(웃음) 그렇게 최선을 다해 키우지 않아서 기대감도 없고 며느리감도 신기하게 다 자기와 닮은 여자들을 데려와서 잘살더군요. 제가 바빠서 시어머니 노릇을 할 여유도 없고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자기 남편 흉을 보려고 하면 제가 더 심하게 제 남편 흉을 보니 고부갈등도 없습니다.”

세 아들을 낳아 기른 것 외에 가장 잘한 일을 여성학 공부를 한 거라고 했습니다.
“10년을 전업주부로 지내고 서른아홉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여성학이 막 한국에 도입되어 매스컴에 가끔 소개되는 무렵이었습니다. 막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그마나 제 시간이 좀 나니까 마흔을 앞둔 위기감과 더불어 ‘난 뭔가’란 자의식이 느껴지더군요. 막연히 행복하기는 한데 내 인생이 이게 전부는 아니다란 자각도 들었어요. 그동안 여성들에 대한 고정관념, 사회적 억압이 참 심했죠. 여자는 머리가 나쁘다거나, 전업주부로 살림하는 것을 집에서 논다고 여기는 것이라거나…. 저는 다른 여성을 의식화하고 해방시키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다만 제 삶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싶은 지적 호기심으로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신문기자 출신이라는 것, 심지어 세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도 다 내려놓고 인간 가운데 여성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공부했습니다. 여성 심리가 아니라 학문으로서 진지한 공부를 한 거죠.”

여성학을 공부한 후 어떤 변화를 느꼈습니까.
“눈이 트이는 개안의 경험을 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 인간을 보는 눈,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더군요. 여성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일상에 안주하며 살았을 겁니다. 조금 신앙 간증 같은 이야기이긴 한데 여성학을 공부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만만치 않다,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장 좌판 행상을 하는 아주머니를 만나도 자연스럽게 곁에 앉아 ‘애는 누가 봐줘요’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성학자나 페미니스트에 비하면 너무 온순하고 부드럽습니다.
“그건 제가 공부를 나이 들어서 시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혼도 하고 주부로 살며 생활의 때가 묻어 있어서 학문적 순수성이 없어요. 일상과 타협하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 아이 다루듯 웃으며 부드럽게 말해서 그렇게 보일 겁니다. 여성학을 공부한 지 31년째인데 여성학의 부침이 참 심했어요. 한때는 여성학 강좌가 급증하다가 이제는 정치와 여성, 여성과 경제 등으로 다른 분야에서 여성학을 접목하기도 하고, 여성부가 생긴 후에 법과 제도적으로는 90%가 남녀차별이 없어졌습니다. 초기 여성운동가들이 맹렬히 노력한 덕분이지요. 단기간에 높은 성과를 이루었지만 경제가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의 취업도 어려워지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남성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처럼 여겨져 역풍이 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는 여성인권 차원이 아니라 100년을 살아가야 할 여성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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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에 대하여>란 책에 쓰신 ‘신 시어머니 10계명’은 인터넷에 많이 회자되더군요.
“나이 들수록 혼자 잘 놀줄 알고,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무심해야 한다는 뜻에서 쓴 글입니다. ‘1. 나는 시어머니이기 이전에 나다 2. 아들은 며느리의 남편이다 3. 며느리는 딸이 아니다 4. 며느리도 나와 같은 여성이다 5. 아들네 집은 내 집이 아니다 6. 며느리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라 7. 좋은 며느리란 따로 없다 8. 아들도 며느리도 손님이다 9. 칭찬하고 또 칭찬하라 10. 생긴 대로 보여주라’, 이게 10계명인데 젊은 여성들이 참 좋아하더군요.”

얼마 전 20~30대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를 보니 ‘결혼을 꼭 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성이 40% 정도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결혼해도 괜찮아>란 책을 쓴 이유는 뭔지요.
“요즘 여성들이 똑똑해져서 결혼은 절대 환상이 아니란 것을 압니다. 남편감이 왕자도 아니고 자신이 신데렐라가 아닌 것도 압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재미있게 풍요롭게 살까가 먼저여서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거나를 선택하는 걸 겁니다. 그런데 70여년의 삶, 45년의 결혼생활을 경험하고 여성학을 공부하고 강의실 등에서 수많은 이들을 만나본 결과, 결혼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행복하고 보람 있는 경험이고, 결혼생활을 통해 배우는 것도 너무 많아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너무 셈을 앞세우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인생은 셈한 대로 풀리지 않을 뿐더러 완벽한 셈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니까요. 지금 이익이라고 생각해봤자 나중에 손해일 수도 있고, 지금은 손해인 것만 같은데 결국은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게 인생입니다. 특히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얼마나 돈이 들까란 계산이 아닐까요. 단언컨대 아이를 안 낳는다고 그 돈이 고스란히 통장에 쌓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즐거움과 기쁨은 문화생활을 누리며 얻는 즐거움 그 이상입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 들면서 늙어가는 남편과 지루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잘살 수 있을까요.
“그게 제 화두이기도 합니다. 책에도 썼지만 ‘결혼정년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궁리도 했습니다. 결혼의 정년을 20년으로 두고 20년이 지나면 같이 살 건지, 아니면 헤어질 것인지 계약을 하는 겁니다. 그걸 국회에서 법으로 제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웃음) 헤어질 때도‘너 죽고 나 죽자’ 이런 식의 감정 소모 없이 쿨하고 깨끗하게 돌아서는 겁니다. 결혼에 ‘영원히’를 없애면 서로 긴장하며 살지 않을까요. 저는 남편이 미워질 때마다 제가 처음에 그 사람을 만나고 남편으로 선택했을 때를 떠올립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실천하는 셈이죠. 연애할 때 멋지게 보였던 과묵함이 무심함으로, 박학다식함이 잔소리로 느껴지는 것은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제 눈에 제가 씌웠던 콩깍지가 벗겨진 것이거든요. 물론 폭력을 일삼거나 부정을 저지르는 남편을 무조건 참고 살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수시로 좋은 점을 찾아 감사하며 사는 훈련을 하면 됩니다.”

감사의 훈련을 어떻게 합니까.
“아침이면 눈떠서 ‘안녕’ 하고 말할 사람이 있다는 것, 배고프다고 해서 같이 아침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 방을 마구 어질러놓고 치우지 않아 덕분에 나도 마음껏 늘어놓고 살 수 있다는 것, 영화를 보거나 산에 가자고 했을 때 같이 가기 싫으면 억지로 따라가지 않아 일찍이 혼자 노는 법을 익히게 해준 것, 뱃살을 간직해줘서 덕분에 나도 살을 빼야 한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등등 감사일기를 쓰자면 끝이 없죠. 남편을 ‘동거하는 이성 친구’라고 여기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것, 그것이 해로의 방법입니다.”

 

자신의 삶이 ‘호기심 천국’이라는 박혜란씨는 남편을 처음 만났던 대학 연극반의 추억을 떠올리며 80세 이전에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열정보다 그리움으로 사는 나이이지만 그래도 노년에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 가득할 것으로 믿는 덕분일까, 손주 여섯을 둔 칠순 할머니인 그의 눈빛은 여전히 젊고 초롱초롱하다.

<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 사진·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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