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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아시아경제] [여성리더 인터뷰④]"슈퍼맘 환상 버려야 일·육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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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8-01-22 19:39 조회2,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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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102611222632122

 

2017 여성리더스포럼 프런티어6기 연속인터뷰④ 
여성학 선구자이자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기자 관두고 10년간 경단녀로  
서른아홉 늦은 나이에 여성학 공부  
여성은 일·가정 양립에 유리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박혜란 여성학자는 지난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여성이 일과 육아를 효과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사진=문호남 기자)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엄마의 하루>  
습한 하루로/ AM 6:00이면 시계같이 일어나/ 쌀을 씻고/ 밥을 지어/ 호돌이 보온 도시락 통에 정성껏 싸/ 장대한 아들과 남편을 보내놓고/ 조용히 허무하다…(중략)…/ 밥을 짓다/ 설거지를 하다/ 방바닥을 닦다/ 두부 사오라 거절하는/ 아들의 말에/ 이게 뭐냐고 무심히 말하는/ 남편의 말에/ 주저앉아 흘리는 고통의 눈물에/ 언 동태가 되고/ 아들의 찬 손이 녹고/ 정작 하루가 지나면/ 정작 당신은 또 엄마를 잘못 만나서를/ 되뇌시며 슬퍼하는…(중략)…'강철 여인'이 아닌 '사랑 여인'에게/ 다시 하루가 길다  
 
여성학자 박혜란(72)씨에게는 특별한 생일선물이 있다.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뒤늦게 시작한 여성학 공부와 세 아들을 뒷바라지 하는 육아일을 병행하느라 고군분투할 무렵, 중학교 3학년 아들이 선물 살 돈이 없어 대신 쓴 거라며 자신의 생일날 조용히 건넨 시 한편이다. 그 아들은 지금 장성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가수 이적(본명 이동준)이다.

 

박씨는 "당시 책상 의자에 앉아 여성학 레포트를 쓰다가 일어나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남편과 아이들이 밥을 먹은 후 설거지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원서를 보면서 대학원 공부를 했다"면서 "아이들이 어렸지만 (엄마가) 밥을 해준다는 것에 굉장히 고마워했고, 힘들게 공부하는 엄마를 불쌍히 여겼던 것 같다"고 웃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추억처럼 얘기할 수 있지만 그 시를 선물받았던 당시에는 큰 소리로 펑펑 울었다. 평등문화실현을 목표로 설립된 사단법인 '또하나의문화'에서 활동했던 박씨는 이 시를 동인들과 공유했다. 아이를 키우던 여성동인들은 다함께 얼싸안고 울었다. 엄마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듯한 중3 아들의 마음이 기특하고 한편으론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끼리 공감할 수 있는 일종의 동병상련이었다.  

 

박씨는 아들 셋이 학교를 다녀 가사노동이 가장 많은 시기 동동거리면서 일했던 때가 잊히지 않는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지 않아 일하는 엄마들에게 도시락 싸는 일이 가장 힘들었어요. 지방 강연에서 늦게 돌아오면 저녁에 반찬거리가 하나도 없어 냉동실에서 정체를 알 수 있는 식재료를 해동해 부랴부랴 반찬을 만들곤 했죠." 아침에 도시락을 싸려고 감자볶음이라도 해줄라치면 감자엔 온갖 싹이 돋아있고, 계란말이를 부칠까 하면 그날따라 계란은 똑 떨어져 있더란다.

 

남편은 "이게 뭐냐"며 남편대로 불만이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남편상에 길들여진 남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육아와 가사는 여전히 여성의 몫이었고, 여성학을 공부하는 자들도 현실에선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시대의 한계를 개인이 '못' 넘어서고 또 '안'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라며 "기득권을 가진 자(남성)가 스스로 먼저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 발 먼저 걸어갈 생각이 아닌 사람들은 다수가 걸어가는 길 한가운데 서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뒤떨어지지만 않아도 앞서가는 것으로 여긴다"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페미니즘이 태동했을 때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박혜란 여성학자 (사진= 문호남 기자)

박씨는 우리나라 1세대 여성학자다.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10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1984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에 입학하면서 여성학자로서 새 출발을 했다. 33년간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비주류였던 여성학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마흔을 앞둔 나이에 늦깎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데는 소설가이자 박씨의 롤모델이었던 고 박완서 작가의 삶이 큰 힘이 됐다. 기자 시절 때 박 작가를 처음 만난 박씨는 "박 선생님은 40살 늦은 나이에 데뷔했는데 1970년대 40살 여성은 요즘의 70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았다"면서 "당시 대부분 여성 작가들이 30대까지 이름을 날리다 이후 시들어지는데 박 작가는 아이를 다섯 키우고 연탄을 하루에 13장씩 갈아가면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박씨는 소녀 같은 함박웃음을 짓는 박 작가를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행복하려면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10년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있으면서 지적인 훈련이 안 돼 있다 보니 늦은 나이 공부할 때 힘들었던 적이 많다"면서 "하지만 여성은 멀티플레이를 잘할 수 있는 강점이 있기 때문에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워킹맘들에게 슈퍼우먼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했다. "세상에는 그저 우먼(여성)만 있을 뿐이지 슈퍼우먼은 없어요. 때로 세상은 나에게 슈퍼우먼을 요구하지만 못 따라갑니다. 결국 '번 아웃(에너지 고갈)'되고 말아요.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세요. 지나치게 완벽을 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육아문제를 고민하는 엄마들에게도 똑같은 해법을 내놨다. "지나치게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지 마세요. 적당히 사랑하세요.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그저 믿어주면 됩니다."

 

그는 여성학자지만 육아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들 셋을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보낸 자신만의 교육론을 담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이 1996년 출간 당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스테디셀러다. 이후 여성학ㆍ육아법ㆍ에세이 등 저서 11권을 출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박씨는 "성공하는 아이를 목표로 삼지 말고 행복한 아이로 키워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인간. 100살까지 남한테 기대지 않고 경제적ㆍ심리적으로 의존적이지 않은 인간. 스스로 자족할 수 있는 인간. 그런 인간으로 키우면 애를 잘 키웠다는 것이다.  

 

아이들 학창시절에 한 번도 학교를 찾아가지 않았고, 심지어 막내 아들이 고3일 때 중국 옌볜대학 초빙교수로 나가는 바람에 아들이 스스로 도시락을 싸고 다니는 처지였다. 하지만 세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잘 자라줬고, 각각 건축가·가수·방송국 PD라는 창의적인 직업을 선택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그만 기업체를 운영했던 남편의 사업이 망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둘째 아들이 부른 노래 '달팽이'가 인기를 누리던 때다. 아들이 막 떠오를 때 남편은 추락(?)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일흔 살 삶을 살아보니 뛸 듯이 즐거웠던 것도 한때, 죽을 듯이 괴로웠던 것도 한때더라고요. 그러니 밥 먹읍시다!" 박씨는 삶을 살면서 위기가 다가올 때면 멘털을 강하게 할 수 있는 계기로 받았들였다.  

 

"육아기간은 10년 정도인데 전체 삶에서 보면 10년은 아주 짧아요. 그런데 젊은 여성 입장에서는 그 10년이 아주 길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이때는 생각을 유연하게 하세요." "지나치게 완벽을 기하려 하지 말고 일과 육아를 통해 여성 스스로가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프로필 ▲1946년 수원 출생 ▲1969년 서울대 독문과 졸업 ▲1968~1974년 동아일보 기자 ▲1984년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입학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공동대표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이사장 역임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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