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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축하합니다 - 졸업생 얼씨구가 졸업 아마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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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2-16 17:26 조회6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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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는 올해 졸업을 맞는 산어린이집의 아마이며,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십니다. 

얼씨구의 졸업을 축하하는 편지를 올립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19년에 부천산어린이집에 보낸 첫째 윤채가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었네요. 함께 아이를 키워준 아마들과 선생님들께 정말 감사한 요즘입니다. 터전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희 터전은 그 동안 코로나로 한 번도 오프라인 졸업식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번 졸업식에는 4년만에 온 조합원이 모여 졸업을 축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동안 제대로 즐길수도, 연대도 할 수 없어 정말 아쉬웠는데, 이번 졸업식에서 만큼은 떠나는 아이들을 마음껏 축하해주고, 한 해 동안 고생한 교사회에 아낌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터전을 떠나는 선배들과 슬픔을 깊게 나눌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공동육아를 졸업하는 모든 아이들과 아마들! 그 동안 정말 애쓰셨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삶의 위로가 되어준 공동체


졸업을 앞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 동안 터전에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따뜻한 추억이 되어 다가옵니다. 첫째 윤채를 낳고… 육아는 고되고, 생업은 바쁘고, 주변에 마음 나눌 친구는 없어 외로웠습니다.'회사가기 싫어’병을 앓고, 급하게 여행을 다녀와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 “어른의 삶은 이런건가”단념하곤 일상으로 복귀했다가 캐리어를 싸기를 반복하던 중, 공동육아를 시작하게 됩니다. 

쿨한 것은 멋있지 않다고, 질퍽하고 끈적끈적한 삶을 지향했기에, 사람들과 얽혀서 복잡하게 사는 공동육아와 공동체의 삶은 너무 저와 찰떡이었죠. 늦은 방모임, 끝나지 않은 총회~ 이 모든 것이 낭만적이었고, 따뜻했습니다. 공동육아는 운명이다 싶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하면서 육아는 더 이상 우리 가족만의 몫이 아니었고, 나눌 수 있었기에 훨씬 가벼웠습니다. 아마들은 동네 친구가 되어주었고, 건조한 삶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주었습니다. 

코로나로 서로 함께 하기 어려워진 그 시기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위로해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기뻐해주었죠. 코로나 인한 보육 공백을 서로 품앗이하면서, 셀 수 없는 온라인 회의를 통해 조합을 운영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서, 신명나게 놀아야지 했는데, 어느새 졸업이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정말이지, 이 시기를 함께 해준 공동육아 공동체가 있어 삶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나아간 세상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졸업을 앞두고,‘아이와 어떻게 살았나’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써온 날적이를 모아 펼쳤습니다. 파스텔 톤의 작은 노트 8권. 매일 매일 아이에 대한 마음을 고백한 글들. 졸업 이야기의 글감을 찾을 요량으로 첫 권을 펼쳐 읽다가, 나도 모르게 계속 다음 장을 넘기며 아득해집니다. 

 

​네 살. 윤채는 엄마가 보고싶어서 매일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원 하면서도 내일은 절대로 산집에 가지 않겠다 다짐하는 아이였지요. 아빠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뭐했어?” 하고 물으면, “바빴어. 엄마를 기다리느라, 마음이 바빴어.” 대답하였습니다. 밤낮으로 우는 윤채를 보며 흔들리는 부모에게, 방 담임이었던 햇살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적어주고,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하나 하나 해낸다’며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낸 것들은, 달팽이 놀이, 통통통 체조, 낮잠 누워 자기, 신발 신고 마당 가기, ‘빌려줘’하고 말하기.. 같은 것들이었어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도, 그땐 ‘생각지도 못하게 해낸 것들’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넓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과제도 곧 너무나 당연하게 해내겠지요.

 

다섯 살이 되자, 펜데믹이 시작되었고 길고 긴 가정보육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아이와 송내 공원으로, 거마산으로 산책을 나갔지요. 나물 캐는 할머니들 틈에서 돌나물을 뜯어 먹고, 진달래를 뜯어 화전을 부쳤습니다. 나들이 나온 산집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함께 놀면 팔랑 팔랑 신나다가도, 막상 등원하라고 하면 어찌나 우는지. 그러던 와중에 동생 유찬이가 태어났고, 윤채는 선물로 받은 동생 내복을 모두 자기가 껴입고는 유찬이가 무슨 무늬 기저귀를 했는지까지 참견하는 열혈 누나가 되었습니다.

 

​여섯 살, 드디어 날적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말. “그런데 나는 오늘 엄마, 아빠, 유찬이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났어!” 친구들과 노는 게 너무 즐거워서 엄마 생각도 안 났다니. 그 자체로 기쁨이 차올라 날적이에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기 우리 가족은 참 많이 바빴는데, 윤채는 산집에서 “아이들은 노는 게 일이야!” 주장하며 열심히도 놀았습니다. 제비꽃 치과에서 첫 이도 빼고, 곤충을 잡아 키우기도 하면서요. 그런데도 여전히 우는 날이 많았어요.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여러번 갸웃거렸지요.

 

일곱 살이 되어서는 반항기가 찾아왔는지, 팔짱을 끼고 무서운 눈으로 세상을 노려보며 다녔어요. 앙칼지게 친구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제 민낯을 들키는 것 같아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윤채가 어느새 스르르 팔짱과 눈에 힘을 풀더니, 다시 반달눈 웃음을 짓는 천진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 선생님 친구들에게 잔소리는 여전하지만요.

 

하루도 빠짐없이 울던 아이는 훌쩍 자라서, 2박 3일 졸업여행을 거뜬히 다녀옵니다. 매일 친구들을 찾고, 무슨 모험을 했는지, 어떤 탐정 사건을 해결했는지 신이 나서 말합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발견한 아이디어를 말할 때, 반짝거리는 눈과 입술을 바라보며 엄마아빠는 매일 새롭게 반하지요. 이렇게 아이는 산집에서 근사하고 단단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상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운 아이를 보고 있으면, 팔불출 부모는 자주 행복해집니다. 내 아이가 이토록 반짝이다니, 감탄하면서요. 그런데 동시에 저릿하게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지금이 앞으로 우리가 가장 가까운 시간이겠구나, 너는 이 순간에도 나를 떠나고 있구나, 하는 애잔함일까요. 그러고 보면 아이의 성장은 계속 우리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면서도 막상 이루어질 때마다 조금씩 슬퍼졌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을 곁에 두지 못하고 떠나도록 응원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라니. 이토록 어렵고 모순적인 일이라니.

 

처음 터전에 들어왔을 때, 엄마아빠의 세상은 온통 아이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아이를 내보내면서 다른 것들로 채워가고 있어요. 내 아이만을 쫓던 시선은, 아이가 나아간 세상, 터전으로 넓어졌습니다. 저마다 개성 가득한 아이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밀고, 그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는 교사회는 늘 한결 같았어요. 아이들 개성만큼 각자 다르면서도, 왁자하게 놀 때만큼은 하나가 되는 아마들은 내 좁은 세계에 균열을 내어 주었습니다. 공동육아를 하면서, 아이 뿐만 아니라 나도 잘 성장했을까요. 조금 더 지키고 싶은 것이 많아진, 사랑할 줄 아는 용기가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기를 소망합니다. 

 

공동육아는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가 성장하는 곳이다.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졸업을 앞둔 이제야 어렴풋이 그 의미를 알 것 같네요. 아이와 저를 함께 키워준 교사회와 아마들 너무 감사합니다. 

 

 

떠나는 이들에게

 

이제 곧,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들을 떠나 보내야하는 졸업식이 다가옵니다. 공동육아를 위해 오랫동안 애써준 선배님들이 터전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큰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선배들이 지켜온 공동육아란 훌륭한 유산에서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이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에 기대어, 생에 가장 풍성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귀한 시간을 만들어 주어 너무 감사합니다. 

막내 유찬이가 이제 네 살이니, 앞으로 4년은 더 터전을 지켜야하네요. 선배들이 졸업하면, 어떤 역할로 신입 조합원에게 다가갈지 고민을 해봅니다. 말보다 행동으로, 좋은 부모와 훌륭한 어른의 본 모습으로 다가와줬던 선배들. 선배들처럼 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위를 돌볼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잘 가꿔온 터전을 단단하게 지킬 수 있을까요? 

가끔 벅차고, 힘들 때면 연락하겠습니다. 늘 손 내밀어줬던 그때처럼, 다시 힘이 되어주세요. 보내고 싶지 않은 깊은 아쉬움에 투정 한번 부려봅니다. 

오랫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고마웠어요. 잘가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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