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합시다! 그리고 바꿉시다 !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사무총장 이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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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4-05-13 16:38 조회5,413회본문

네팔의 박타푸르에서 11월이면 사람들이 꽃으로 장식한 가마를 들고 아름다운 왕궁 앞으로 모여드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광장에는 도시 구석구석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그것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유명한 박타푸르 축제입니다.
이 축제의 연원은 좀 놀랍습니다. 박타푸르 왕국의 왕비가 아이를 잃어 삶을 포기할 정도로 슬픔에 빠져, 왕이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해에 식구들이 죽은 사람들이 있으면 모두 가마를 들고 왕실 앞으로 모이라고.
그날, 왕실 광장에는 왕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마를 들고 모였습니다. 그 순간 왕비는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식구를 잃은 슬픔을 겪고 있음을 깨닫고, 함께 울고서는 일어섰습니다. 왕은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해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슬픔을 서로 보듬으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축제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 왕국이 사라진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축제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축제날 훨씬 전부터 집집마다 가마를 들 이, 가마를 만들 이, 축제를 기획하는 이, 음식을 준비할 이가 정해지고, 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이도 축제를 보고 즐기는 일을 합니다. 다른 곳에 나가 있는 이들도 이날은 돌아와 참석한다 하니, 모든 사람이 기획부터 뒤풀이까지 함께하는 진정한 지역 축제가 벌어지는 것이겠지요. 손님으로 끼어 보기만 했던 이들도 축제의 과정에 ‘진정한 공동체’를 경험한답니다.
지금의 박타푸르는 오래도록 혼돈에 빠져 있는 네팔에서 드물게 안정되어 있고 공동체적으로 자신들의 생활과 문화를 유지하는 도시입니다. 오래된 아름다운 건축물은 유적지라기보다 주민들이 일상으로 이용하는 생활 공간이면서도 유물로서도 잘 보전합니다. 주민들은 오래된 신전에서 기도하고 노래하며, 도로 곳곳에 있는 자그마한 신상에는 아침마다 꽃과 쌀이 놓입니다. 가난한 주민들이 많지만 곳곳에 협동조합과 시민단체를 만들어 생활을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이곳은 자부심이 넘치는 살아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길게 박타푸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실마리를 이곳에서 잡아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처구니없이 여린 생명들을 떠나보내면서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와 친지, 학교 친구, 동네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두 슬픔의 공동체로서 슬픔과 분노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를 생각하니 더 속상해집니다. 왜 한 마을 사람들이 같은 날 장사를 지내는 역사가 되풀이 되는지. 동학농민혁명기, 제주도 4.3항쟁, 한국전쟁, 4.19혁명, 그리고 광주민주항쟁이 그러했습니다. 대구의 지하철이나 시랜드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개인의 슬픔 뒤에 감춰진 수많은 죽음들도 있습니다. 아동 ∙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와 노인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말은 잘못된 시스템과 무관심이 일상에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음을 말합니다. 사라진 이들의 뒤에 가족들은 그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갑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우리는 오래전부터 집단 트라우마를 지니고 삽니다. 그것이 더 깊어졌지요. 막힌 마음이 화로 나타납니다. 재난 구조 시스템이 운영되지 않는 국가와 경찰, 책임지고 해결하려 하지 않는 듯 한 정부, 부정부패의 유착 관계와 돈의 논리만 난무하는 세상이 싫습니다. 유례없는 경제성장에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가 되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룬 선진국이 되었다고, 최고의 아이티 기술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성공 신화에 헛웃음이 납니다. 때론 외면하고 싶습니다. 분명히 한두 달 지나면 월드컵 경기나 아시안 게임 때문에 다 잊어버릴 것이라며 냉소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잠시 멈췄습니다. 슬퍼하고 화만 내고 있다고 이 트라우마가, 이 고통이 치유될까?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럼 또 다시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혀 버려야 하나? 그것은 참 싫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답은 간단했습니다. 끊어 버리면 됩니다. 그 근본을 직면하고 끝까지 파고들어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만이 트라우마가 더 이상 남지 않고 우리를 슬픔과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음을 잘 압니다. 알면 해야지요.
일단 가장자리를 봅시다. 내 안에 슬픔이나 공포나 절망이 가득할 때, 안간힘을 내어 그 가장자리를 보라 합니다. 그때 발견합니다. 그것이 가장자리가 아니며, 거기에는 나의 아픔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 있고, 비슷한 경험을 하는 다른 이들이 있음을. 그렇게 발견한 이들과 손을 맞잡고 서로 위로합시다.
마음을 일으키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전쟁의 폐허에서 지금까지 우리 선배들은 세상을 직접 일궈 왔지, 4.19와 전태일과 광주가 슬픔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만큼이라도 말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국가도 시장도 제대로 아이를 돌봐 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는 공동육아를 시작해 협동의 힘으로 아이들을 돌봤지. 죽음의 교육에 더 이상 아이를 방치할 수 없다 여겨질 때 교육의 다른 길을 찾았고. 그렇게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것들이 지금의 제도가 되었다는 걸 다시금 발견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벽을 뚫고 나갔습니다. 누가 해주길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그러면 됩니다.
많은 이들이 생명과 윤리가 실현되는 사회가 당연하다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광장에 노란 리본을 달고, 길게 선 분향소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그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생명의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마음이 모아집니다. 생명의 순환 농업을 실천하고, 동물과 인간의 생명권이 같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의 핵에서 벗어나는데 동의하고, 사람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교육을 실천하고, 사람답게 보살핌을 받고 존엄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하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모든 생명 사이에 지켜야할 도리인 공존과 평화가 살아있는 공생 사회를 실천하고, 또는 실천하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슬픔의 공동체를 그 슬픔을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기억의 공동체로 바꾸는 일입니다.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더 빨라질 것입니다. 진도와 안산을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마음을 다잡는 기억의 공간으로 만듭시다. 그리하여 바꿉시다. 그리고 연대와 공감으로 아파하며 기뻐하는 진정한 축제를 엽시다.
더불어 조합원 여러분께 제안 드립니다.
자세한 내용 참조 드립니다. -> http://www.gongdong.or.kr/notice/26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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