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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가 우리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4년이지만, 그 배경에는 1970년대 말부터 빈민 탁아운동을 해 온 대학생 집단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해송 어린이 걱정 모임'과 '공동육아연구회'라는 모체가 있었습니다.

1978년에 결성된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은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 것인가' 고민하면서 1980년 '해송 유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유아원을 운영하면서 교육현장의 자율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의 중요성과, 교육이 교육이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부분과 함께 교육 내부의 장기적 안목과 자기 혁신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1984년에 설립한 '창신동 해송 아기둥지'는 자연과 일과 놀이가 결합된 생활을 강조하는 교육관에서 출발하여, 교육내용 구성에 있어 교사와 부모를 교육의 주체로 보는 인식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해송아기둥지는 현재 '해송 지역아동센터'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 영유아보육 법 제정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던 때 '해송어린이걱정모임'은 '탁아제도와 미래의 어린이 양육을 걱정하는 모임'으로 재발족하였습니다.

1991년 계층 차별적인 보육정책과 사회적 육아의 영리화·관료화의 문제가 근간을 이루는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자 걱정모임은 '공동육아연구회'로 개칭하고 직접 구체적인 공동육아 터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방향은 계층 통합을 실현하는 보편적인 보육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육아환경의 기준을 높이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열어갈 수 있으리라고 전망하며 부모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동육아 터전을 만들고 서로의 기대와 가치관을 나누고 절충하며 함께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이 고안되었고, 그 결과 1994년 신촌 우리어린이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공동육아연구회'는 1996년 '(사)공동육아연구원'으로 정식 발족하였고, 2001년 10월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으로 개칭하였습니다. 보육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을 공동체적으로 키우자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