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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경향비즈] 개인을 공동체로, 경쟁을 협동으로 바꾸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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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11-25 15:30 조회6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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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지하철 5, 6호선 공덕역 1번 출구 인근의 빈터를 활용해 텃밭과 포장마차,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경의선공유지’의 풍경. / 주영재 기자

서울 마포구 지하철 5, 6호선 공덕역 1번 출구 인근의 빈터를 활용해 텃밭과 포장마차, 전시공간을 운영하는 ‘경의선공유지’의 풍경. / 주영재 기자

서울 마포구 공덕역 1번 출구를 나오면 고층 건물과 신축 아파트 단지 사이로 경의선 숲길이 나온다. 이곳에 빈 철도부지를 점유해 수공예품 상점과 분식집, 작은 텃밭을 일구는 이들이 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이다. 개발권을 얻은 이랜드가 10년 가까이 빈 땅으로 둔 이곳을 점거해 전시공간과 마을장터, 도시개발로 쫓겨난 도시난민들의 일터로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이 지역 상권개발을 시작하면서 곳곳에 철거를 요구하는 노란색 안내문이 붙었다. 

공유지 운동은 땅은 본래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모두가 함께 사용하고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국·공유지를 개발할 때 대기업에만 개발권을 줄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먼저 공간을 활용할 기회를 주고, 공익적 쓰임새가 클 경우 이들에게 개발과 운영권을 주는 방식의 도시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유재산권 문제점 지적 ‘공유지 운동’ 

정기황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공동대표는 “대기업이 쇼핑몰이나 호텔을 짓는 게 아니면 개발이 불가능한가”라면서 “시민들이 접근하기 편한 곳에 도서관이나구청과 같은 공공시설을 지으면 공익적인 가치에서 훨씬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건축학 박사인 정 대표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여러 실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서울 구간만 6.3㎞인 경의선 철도부지는 빈 땅을 찾기 어려운 서울에서 공기를 순환시키는 바람길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공덕역과 홍대입구역 등 경의선 철도부지 네 곳이 모두 민간기업의 개발권 아래에 놓여 있다. 홍대입구역 개발을 맡은 애경의 경우 임대료 분쟁을 겪기도 했다. 정 대표는 국토부 등 관계기관이 국유재산법상 국유지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인 ‘공익’을 과도하게 확장 해석해 대기업에 유리한 개발수익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기황 대표는 “대기업이 개발로 주변 상권을 흡수하고, 임대료 수익을 얻는 것을 사회적 가치로 이야기한다”며 “개발로 땅값이 뛰어 사람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미 예상하고 공공기관에서 시행하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공유지 운동은 사적 소유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항의 기지’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독일과 영국 등에서 번진 공간 점유 운동 ‘스콰트(squat)’와 유사하다. 스콰트는 방치된 빈 공간을 소유자 허락없이 점거해 예술공간으로 사용하는 운동이다. 영국 등에서는 빈집 등을 48시간 이상 점유하면 사용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점차 제도로 인정되고 있다. 시장에서의 교환가치(소유권)보다 사용가치를 훨씬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한국에선 빈집이 옆집과 마을 전체에 피해를 주는데도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이를 방기한다”며 “사유재산권이 헌법보다 위에 있다”고 말했다.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은 아직 고립된 섬처럼 실험을 하고 있다. 원시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만들고 꾸미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구성원들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고 있다. 아현동 재개발로 쫓겨나 4년 전부터 이곳에서 ‘강타포차’를 연 전영순씨(70)는 “25년간 포장마차를 하면서 전부 아들뻘 손님만 있었는데 이곳에 와선 동네 할아버지들이 단골이 돼 하루라도 안 보이면 궁금하고 염려가 된다”며 “아현동 시절에 비하면 수입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여기서는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가 생겨서 마음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재산권과 사적 계약의 자유를 기초로 한다. 김진방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수정을 위해선 사적 계약의 요소인 개인을 공동체로, 경쟁을 ‘합의’ 혹은 ‘연대’로 대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원리에 맡겨버려 비리와 아동학대, 원장 자의에 의한 교사들의 연차 사용 제한 등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는 육아와 돌봄서비스에서 공동체적 대안이 확산되고 있다. 

1994년 시작된 공동육아협동조합은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교사를 초빙해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부모들은 협동조합과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한다. 교사들도 보수와 휴식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이경란 사무총장은 “신자유주의는 모든 걸 개인이 책임지는 사회로 만들었다”며 “모든 것이 상품화되면서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개인의 역량이 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보험회사가 흥하고 아이들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시험 경쟁에 매몰된다.
 

시장에 맞서는 ‘공동육아’ 협동조합 

이경란 사무총장은 “1980년대나 90년대 초반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와서 골목에서 놀 짬이 있었지만 지금 아이들은 초등학생조차 아침부터 오후까지 학교·학원으로 꽉 짜여 있다”며 “스스로 생각하고 놀고 사람들과 어울려 뭔가 기획할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창의력을 키우기는커녕 아동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아이들의 행복마저 박탈당하는 상황이다. 

협동조합은 비영리성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 조직으로서 당사자의 참여와 협의, 민주적 운영을 기본으로 한다. 가치 경영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조직체다. 사회적으로 연대해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서비스 영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여기에는 지자체와 정부의 협력이 필요하다. 공동육아의 경우 공간을 지원하지 않으면 확산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경란 사무총장은 “개인이 돈에만 의지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라면 사람을 믿게 하는 공동체적 원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협동조합의 핵심인 연대의 정신을 발휘해 각 분야의 협동조합이 연대해 지역사회를 바꾸면 사실상 한국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더 나은 미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의 설명에 따르면 브라질은 낡고 까다로운 투표제도 탓에 저소득층에서 무효표가 많이 나와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투표제도를 저소득층도 투표하기 쉽게 바꾸자 재분배를 주장한 후보들이 많이 당선됐다. 제도 개선은 불평등을 치유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 진영에선 이런 제도의 하나로 기본소득이 거론된다. 

최근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 보고회를 열어 2021년부터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 월 30만 원씩 지급하는 등의 방안을 발표한 이원재 랩(LAB)2050 대표는 “기본소득제 논의는 혁신 성장하고도 연결된다”며 “사회보장이 확실해야 (해고 가능성이 있는) 혁신산업이 가능한데도 이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정책 실험이 필요한데 정치권의 누구도 용기 있게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 논의 확산을 위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자체별로 청년기본소득이나 농민기본소득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정책이 나오는데 쪼개져서 여러 곳에서 나오니까 잘못하면 제도가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가기본소득위원회와 같은 공론화 기구를 만들어서 어떻게 설계할지 큰 틀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11161102001&code=920100#csidx9d40232945ce0e6a5e208ed29db0d65 onebyone.gif?action_id=9d40232945ce0e6a5e208ed29db0d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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